[강유의 유럽원정기] #6.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이제 끝이다. 끝났다. 이 한 달여간. 난 뭘 했고 뭘 배웠지? 이제 다시 운동도 하고 복학해서 열심히 공부도 하는거다. 인생의 피신처였던 군대도, 여행도 모두 끝났다. 이젠 김강유 인생, 20대의 후반전이 시작이다. 글·사진 | 강유
6월의 첫날. 파리로~~!!!
오늘은 반드시 파리에 들어가겠다! 8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달렸다. 메마른 부르고뉴의 땅과 풍경은 내 콧속을 건조하게 만드는 거다. 더더욱 오늘 점심도 케밥. 베장숑 이후로 중독된 게 아닐까. 양고기 냄새가 너무나도 좋다니.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오늘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다. 정말 앞만 보고 달렸다. 사진도 찍지 못했다. 배터리도 없다. 그저 부르고뉴의 메마른 풍경들이 매우 빨리 지나갈 뿐이다. 내 마음은 이제. 자전거도 질린다. 그저 파리에 도착해 숙소 잡고 쉬고 싶다는 일념뿐이다. 어느새 이번 여행의 Odometa도 1500km를 넘어 섰다. 속도계의 적산거리가 1536km를 가르켰을 때. 난 파리 시내의 전화부스에 있었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여기 파리에요” 갑자기 눈물이 고인다. 왠지 한국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이제 자전거는 꼴도 보기 싫다. 그런 일념으로 한국사람들을 찾아 헤멨다. 아직 저녁시간이지만 섬머타임으로 환한지라. ‘그래, 파리는 관광지야. 분명히 한국 사람이 있을 거야~!’ 라는 생각으로 유명 관광지를 돌아 다녔지만 만날 수 없었다. 혼자 저녁을 먹어야 했다. 그렇게 버스정류장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자니 왠지 외로워진다. 이 세상에 나 혼자 하는 느낌. 결국은 아무 역이나 가서 유스호스텔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한국 말소리! 너무나도 반가웠다. 나는 무작정 달려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여학생 두 명이었다. 아마도 깜짝놀랐겠지? 갑자기 시커먼 선그라스 쓴 쫄쫄이가 자전거 들고 뛰어와서니 마을 걸다니. ^ ^ 여튼 그 두 분은 친절하게도 자신들이 묵었던 한인 민박을 추천해 줬고 나는 낼름~! 찾아가서 저녁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6월 2일, 3일 자전거로, METRO로 파리를 관광하다
이제는 더 이상 달려갈 곳 없이 4일 밤의 기차만 타면 독일에서 하루 쉬고 집에 갈 수 있다~! 그러면 TV로 편하게 월드컵이나 보는 거야~! 라는 생각에 사뿐히 일어났다.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나보다는 어린 친구 두명과 같이 루브르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아마도 이전에 다빈치코드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왠지 가서 진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고 싶었다~! 물론 그 여학생 둘은 지하철로 나는 자전거로 가기로 했다~! 후훗~! 파리 시내는 자전거 도로가 제법 괜찮은 터라 쉽게 찾아갔다. 많은 한국 사람들과의 관광이라~! 바로 이거야 이제는 널럴하게~! 그간의 고생을 보상 받을 수 있는 거야~! 라는 마음에 들떴다. 루브르는 처음엔 그 규모에 놀랐지만. ㅡ ㅡ;; 역시 미술관은 따분한 공간이었다. 뭐 제대로 보면 10일은 걸린 다지만 솔직히 나같은 미술 문외한에게는 이 그림이 저 그림 같고 저 그림이 이 그림 같고. ㅡ ㅡ;;; 처음에만 오~~ 였고 2시간을 돌아다닌 뒤에는 아~~ (하품) 였다. 그 외에는 어디가 유명하고 저기는 어디고.... 따분했다. 아무래도 이것저것 보기에는 멋있지만 가이드북에 나온데, 유명한데 가서 사진 찰칵! 이건 내스타일이 아니었다. 생고생은 할 지언정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진정 여행이다! 배움은 길 위에 있다! 라는게 아직도 나의 지론이다. 3일에는 지연누나라는 나보다 2살 많은 누나와 둘이 하루종일 돌아 다녔다. 지하철로, 버스로 아무래도 나는 무대포인지라, 하루권의 대중교통표를 끊고는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데로 다녔다. 이런 나를 보고는 누나 왈 “너 같은 애랑 같이 여행하면 무서울 거 없겠다”라는 말이다. 뭐 내가 생각해도 겁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건 정말 잘 하는 것같다. 유명하다는 케밥집에 한시간 줄을 서서 먹어도 보고, 이것저것, 맛있을 거 같은 거 그냥 사먹어 보고, 어디어디 가야한다는 사진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는 거. 그게 진정 나다! 라는 생각으로 정말 재미있게 돌아다닌 것같다. 비록 자전거가 없는 하루 였지만. 다만, 몽마르뜨 언덕에서 150유로를 소매치기 당한 것은 완전 안습이다. 시골에서는 하나라도 더 주려고 챙겨주려고 했었는데. 도시라는 곳은 이렇다. 역시 도시는 여행을 하기에는 뭔가 너무 넘친다. 여기는 관광이 맞는 표현이다. 왠지 독일의 시골이, 말라붙은 부르고뉴가 그리워진다. 도시라는 곳에 대해 도시인으로서 회의를 느끼는 날이었다. 정말 오늘은 형식에 구애 없이, 밤의 거리를 누비며 돌아다녔다. 게이가 많다는 마레지구를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며 내 엉덩이를 만지는 게 이들에게 웃음 한번 날려주고~! 요렇게 돌아다니자니 아까의 소매치기는 잊혀지는 것 같다. 길가의 거지에게 10센트 동전 하나 던져주는 여유까지 부려 본다. Tip 파리는 우리 서울처럼 그다지 치안이 좋지 못하다. 지하철에는 노숙자의 지린내가 나고, 거리에는 대마초를 피는 애들이 쑥냄새를 풍기며 늘어져 있기도 하다. 내가 돌아다닌 곳이 어두운 거리 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문화의 도시 파리와는 다른 이미지이다. 진짜 여행을 원한다면 혹시 파리에 가는 기회가 되었을 때 아무데나,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 다녀 보길 추천한다. Tip 예술의 도시파리? 아니, 군사도시 파리~! 지금 유명 브랜드로 유명한 거리 샹들리제는 본래 군인들의 퍼레이드를 위한 도로이고, 당연히 개선문은 군인들의 통과문, 에펠탑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철강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 또 파리자체는 여느 군사도시처럼 방사형의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인 즉슨 중앙의 개선문을 중심으로 어느 곳으로든 출정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는 에펠탑 앞의 광장은 본래 우리로 치면 육사의 연병장 이었다. 6월 4일. 파리는 많은 사진은 내게 남겼지만 많은 생각과 느낌을 남기지는 못했다. 아마도 길을 돌아다니지 못함 같다. 다만 겉보임과 실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배 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날이다. 그리고 하루를 머물면 내 여행도 끝이다. 파리 동(EAST)역. 여기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다. 왠지 우울해진다.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이런 꿀꿀한 마음으로 있는데 또 왜 군인이 터치냐. 당당히 여권을 꺼내는데. “Hey, do you remember me? In Besanson.” 오옷~~!! 그때의 그 힙합보이들 중의 한 놈이다. 알고 보니 군인이고 집은 베장숑, 여기서 근무한단다. 하하... 내가 밤 10시 기차이고 지금이 6시이니 근무 끝나고 같이 맥주 한 잔 하기로 했다. 이런 인연이 있냐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도 마음 한 쪽이 우울하다. 그 친구 말이 파리에 한 번 오면 꼭 다시 한번 더 찾게 된다며 다시 자신과 만날 거란다. 하.... 근데 어쩌나 나는 파리보다도 한가한 독일의 시골, 브루고뉴의 메마른 땅이 더 좋은걸. 6월 5일 아침. 아이구 팔다리야
. 밤기차를 10시간 타는데 어째 자리에 사람이 꽉차 10시간동안 앉아서 꼼짝하지 못했다. 서로 뒤엉켜서 잠을 잔 6명의 살가운(?) 승객들은 서로 멋쩍은 웃음뿐이다. 이게다 뭐야! 프랑크푸르트 역은 월드컵 일색이다. 빵의 포장지에도 환영합니다~! 라는 한국말이.... 하! 월드컵이군 간간히 붉은 유니폼의 한국 사람들이 보인다. 나 기차타고 한국 왔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간히 보이는 태극기가 나를 착각하게 만든다. 게다가 프랑크푸르트역을 나오면 우리나라 자동차 광고판이 크게 있다구! 이제 끝이다. 끝났다. 이 한달여간. 난 뭘했고 뭘 배웠지? 이제 다시 운동도 하고 복학해서 열심히 공부도 하는거다 ! 인생의 피신처였던 군대도, 여행도 모두 끝났다. 이젠 김강유 인생, 20대의 후반전이 시작이다! [이 게시물은 the bike님에 의해 2012-06-07 16:34:01 매거진>투어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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